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저자의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류시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니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이름 석자가 참 옛날 이름 같지 않게 세련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름에 '시'자가 들어간 시인이라니 멋스러워 보였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저자의 책을 읽고 점차 저자의 글에 빠져들었습니다.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본명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저자가 대학생이었을 때의 경험, 네팔과 인도에서의 여행기, 우화 등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경험담이나 우화가 새롭고 흥미진진해서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레푸기움
레푸기움은 라틴어로 '피난처, 휴식처'라는 의미입니다. 칼 융의 레푸기움이었던 돌집은 융에게 휴식, 재생, 연구에 몰입하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융 심리학의 대표 저서 <기억, 꿈, 회상>이 집필되었습니다. 저자는 이처럼 자신만의 레푸기움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기만의 사유 공간에서 긴 호흡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는 곳, 분산된 감각을 닫고 자신의 영혼에 몰두할 수 있는 장소.
여태 '레푸기움'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었지만 제 인생에서도 '레푸기움'은 계속 있어왔습니다. 어릴 때는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창을 가진 나의 방, 직장 다닐 때는 직장 동료들이 잘 찾지 않는 도로 건너편 카페, 결혼하고 가족이 생긴 후 지금은 옷방 한쪽에 마련된 나의 책상. 모두 외부의 지나친 소란으로부터 나의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곳입니다. 이전에는 이곳이 현실로부터의 도피 공간이었는데 '레푸기움'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더욱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낙하산 접는 사람
공군 비행대장과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아난드라는 이름의 공군 비행대장이 적의 포격에 전투기가 격추되었지만 낙하산을 펼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 후 고향 카페에서 한 남자가 그에게 경례를 했습니다. 그 남자는 그날 낙하산을 접어 전투기에 설치한 병사였습니다. 그의 전문적인 낙하산 접는 실력 덕분에 낙하산이 제때 펼쳐져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난드는 그동안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습니다.
나를 위해 낙하산을 접어주는 사람. 나의 삶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지해주고, 기도해주는 사람.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되고 숙연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섭섭한 감정이 들었던 시부모님들께도 우리 가족을 위해 지지해주고, 기도해주신 것들이 떠오르며 감사함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낙하산을 접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는 왜 너가 아닌가
북인도에서 핀투라는 아이에게 셈법을 가르쳐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바나나 세 개를 건네주며 핀투에게 바나나가 몇 개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핀투는 "네 개요."라고 답했습니다. 저자는 핀투를 다그쳤고 핀투는 울먹였습니다. 미안해진 저자는 셈 공부는 다음에 하자고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핀투는 눈물을 닦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바나나 하나를 꺼냈습니다. 저자가 준 바나나 세 개에 주머니에 있던 바나나 한 개를 합쳐 모두 네 개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어느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바닷물을 뚫고 달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고민을 토로하던 지인에게, 상담사로 근무하던 시절 고객에게, 회사 생활이 어렵다는 남편에게 어쭙잖은 지식과 생각으로 가르치려들었던 것은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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