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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기' 인생의 진리를 찾아서/인문학 책

김동식 ‘회색인간’ 책 리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ohrosy39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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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간 책 표지


■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동식 소설집 '회색 인간'을 읽게 되었다.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었다. 독서모임의 장점은 책을 편식하는 것을 고쳐준다는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소재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죽음, 살해, 좀비, 식인 등. 어둡고, 자극적이었고, 때로는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독서 스펙트럼이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이 소설집에는 단편소설 24개가 수록되어 있다. 그중 첫 편에 이 책의 제목인 '회색 인간'이 실려 있다. '회색 인간'이란 무엇일까?

 

"그날 이후,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이젠 누군가 노래를 불러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 흥얼거리는 이들마저 있었다. 벽에 그림을 그려도 화를 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눈 감고도 그려낼 수 있도록 벽에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몇몇 사람들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이곳의 이야기를 써내었다. 또 하루 종일 사람들을 외웠다. 자기 전에도 외우고 꿈속에서도 외웠다. 또한 그들은 사명감을 가졌다. 꼭 살아남아서, 우리들 중 누군가는 꼭 살아남아서 이곳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p21

 

만 명의 사람들이 납치되었다. 지저 세계의 인간들의 소행이었다. 사람들은 지저 세계의 인간들이 살아갈 땅을 파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지쳤다. 여유가 없었다. 대화를 나눌 기력이 없었다. 웃음이 없었다. 서로를 향한 동정도 없었다. 그 와중에 배고픔 때문에 흙을 퍼 먹다가 죽기도 하고, 빵 한 쪼가리를 두고 싸우기도 하고, 살해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제 노동 속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저자는 '비인간성'이 있는 상황을 '회색'으로 묘사한다. 그 와중에도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인간성'이 있는 상황을 '회색이 아님'으로 묘사한다. 소설 '회색 인간'은 마치 그림책 '프레드릭'의 성인 편 같았다. 다른 들쥐들은 겨울이 다가오자 '곡식을 모으는 일'을 한다. 반면에 프레드릭은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일'을 한다. 마침내 겨울날, 프레드릭은 다른 들쥐들에게 햇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다. 그러고 보니 프레드릭에 등장하는 들쥐들도 '회색 쥐'였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약 8년 만의 전화였다. 학창시절에는 같은 지역,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에 다녀서 늘 같이 붙어 다녔었던 친구였다. 그런데 대학교 이후로는 다른 지역, 다른 학교, 다른 관심사로 인해 가끔 연락을 주고받다가 결혼 이후로는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구차하게 변명을 하자면 서툰 직장인, 서툰 아내, 서툰 엄마 노릇하느라 '지쳤고, 여유가 없었고, 대화를 나눌 기력이 없었고, 웃음이 없었고, 서로를 향한 동정도 없었다'. 소설 '회색 인간'에서 강제 노동을 하던 사람들의 상황을 표현하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의 나는 '회색 인간'과 다르지 않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 친구와 나는 만화 동아리였다. 예쁘고 멋지고 귀여운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며 놀았다. 수능 후에는 같이 기타 학원에 다녔다. 기타 치며 노래 부르며 놀았다. 친구는 나에게 앨범 같은 존재였다. 그때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추억을 곱씹다보니 그때의 햇살과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도 그림 그려?"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요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아낼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 졌어."라고 말했다. 친구도 동의했다. 그때의 나처럼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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