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이야기의 힘
구비설화는 인류 보편의 원형적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내용을 가진 이야기가 세계 각지에서 동시에 전승된 사례가 아주 많지요. 인류 공통의 심리와 상상력으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들이 산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칼 융은 이를 인간의 집단 무의식으로 설명했지요. p247
이 책에는 옛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담겨 있다. 옛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았다. 아이를 오랫동안 가지지 못한 부모가 나오고, 착한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는 마녀가 나오고, 위기에 처한 여자 곁을 왕이나 왕자가 꼭 지나가고, 그러다가 기승전‘결혼’으로 끝이 맺는다. 이와 같이 ’인류 공통의 심리와 상상력으로부터 산출된 비슷한 이야기‘들을 칼 융은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소설이었다면 이러한 디테일을 상세히 묘사했을 거예요. 그것을 몇 줄의 건조한 문장으로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 옛이야기의 묘미입니다. 구체적인 상상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지요. p197
책이 두껍기도 하고, 그 얘기가 그 얘기 같기도 해서 뒤로 갈수록 지루하기도 했다. 또는 내가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옛이야기들을 이해할만큼의 인생 내공이 없다고 느꼈다. 옛이야기는 구체적인 상상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는데, 나는 그 몫을 잘 못 해낸 느낌이었다.
이야기라는 보물 상자는 여느 과정이 꼭 이와 같습니다. 처음엔 아무 구멍도 안 보이지요. 엉뚱하고 기이하고 말이 안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작은 단서가 나타납니다. 그것을 흘려버리지 않고 이리저리 매만지다 보면, 거짓말처럼 달그락 돌아가면서 잠겼던 것이 찰칵 풀리지요. 그리고 상상도 못 했던 뭔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십 년간 거듭 경험해 온, 그래서 감히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놀라운 마법입니다. p547
옛이야기를 읽으며 아리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저자는 자세히 보면 옛이야기를 통해 ‘진리’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속담을 좋아한다. 오랜 세월을 거친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속담에서 진리를 찾은 것처럼, 옛이야기에서도 진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 자기중심
늘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자기가 더 낫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 사람이 왕비였지요. 지위와 미모에 재력까지 갖추었지만,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없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삶’이라는 자기중심이요. p23
마법의 거울은 왕비에게 치명적인 저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말해주는 거울이 어쩌다 저주의 물건이 되었을까요? 거울을 보는 사람이 색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울이 말해주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대신, 진실을 부정하고 거스르려 했기 때문이지요. p24
위 인용글은 <백설공주>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다. 문득 왕비에게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 말이다.
왕비는 거울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했다. 자신이 가장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나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행복은 타인에 의해 결정되었다. 내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준 것이다.
막내딸에게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할 수 없다는 식이지요. 자기 삶은 결국 자기가 사는거니까요.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딸에게 ‘흐린 가죽’ 따위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가죽을 허용하지 않으니 누구도 그것을 씌울 수 없지요. p108
왕비의 집착은 그녀 스스로를 마녀로 만들었고, 그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다. 이를 통해 나 또한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나 스스로를 마녀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 스스로 나의 행복을 내쫓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삶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기.
# 길 떠남, 마음 비움
이 이야기에서 소년의 존재가 변화될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길 떠남’과 ‘마음 비움’이라는 두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만약 주인공이 그 상태로 삼촌의 집에 머물렀다면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을 거예요.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그렇고 스스로도 더 위축돼서 계속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존재는 운명에 질식되고 서사는 동력을 잃게 되지요. 그런데 ‘어차피 죽을 인생, 어디든지 가는 대로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훌쩍 길을 나서니 이게 하나의 모멘텀이 됩니다. 스스로 동선을 바꾸자 자연스럽게 변화가 시작되지요. p409
위 인용글은 <굶어죽을 관상을 가진 아이>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유쾌하게 읽은 이야기다. ‘어차피 죽을 인생, 어디든지 가는 대로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길 떠남‘과 ’마음 비움‘을 했더니 ’굶어 죽을 관상‘에서 탈피하여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탈출에서 탈피로.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요소는 ‘지팡이’입니다. 이야기는 그 지팡이가 소금장수와 삶을 함께해온 오래된 물건이라고 말합니다. 그걸 짚고 사방 천지를 다녔고 소금 짐을 날랐으니 거기에는 소금장수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셈이지요. 이야기에서 소금장수는 여우를 잡은 것이 지팡이 덕분이라고 말하는데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팡이를 짚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세상의 온갖 비밀을 접하게 되었고, 여우가 할머니로 둔갑한 일도 발견했지요. ‘지팡이는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 힘으로 소금장수는 여우를 퇴치하지요. p440
위 인용글은 <여우 잡은 작대기>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다. <굶어죽을 관상을 가진 아이>가 ‘길 떠남’으로 경험이 자산이 되어가듯, <여우 잡은 작대기>에서 소금장수의 지팡이가 경험의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는 자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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