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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후기

ohrosy39 2025. 1. 1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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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표지

■ 책 소개

  • 제목: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 지은이: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
  •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 주제분류: 아일랜드소설
  • 쪽수: 132쪽
  • 출판사: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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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과 소감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그리고 메리 매케이 선생님에게. p5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가 있는 곳이다. 이 시설에서 많은 여성과 아이가 은폐·감금·강제 노역을 당했고, 많은 여성이 아기를 잃고 목숨을 잃었다. 이 시설은 가톨릭 교회와 아일랜드 국가가 함께 운영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곳이었다. 1996년에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았고, 2013년이 되어서야 엔다 케니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 이웃끼리 친절한 인사를 나누는 날,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날, 케이크를 굽는 날이다. 하지만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여성들과 아이들에게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있는 평범한 날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책 표지에 그려진 까마귀

■ 까마귀

시 외곽에서 새카맣게 무리를 짓다가, 시내로 들어와서는 길 위에서 걸어 다니고 고개를 갸웃하고 어디든 마음에 드는 전망 좋은 자리에 뻔뻔하게 홰를 틀고 있다가 죽은 짐승에 달려들어 뜯어먹고 길에 뭐든 먹을 만해 보이는 게 있으면 장난스레 덮치고 밤이 되면 수녀원 주위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에 자리를 잡았다. p47

이 책의 표지에는 까마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저자가 묘사한 까마귀는 위 인용문과 같다. 까마귀는 뻔뻔하고 죽은 짐승에 달려들어 뜯어먹는다. 나는 이 책의 수녀들이 까마귀와 같다고 생각했다.
 
먼저 수녀들은 뻔뻔하다. 수녀는 "이 애한테 뭐 좀 만들어 줄래? 부엌에 데려가서 양껏 먹게 해. 그리고 오늘은 푹 쉬게 하고."(p79)라고 말하였지만 석탄 광에 있던 여자아이는 멍하게 식탁에 앉아 있고 앞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p81) 그리고 수녀들은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감독하는 한편 잘 사는 부모들에게 인사를 했다.(p26)
 
또 까마귀가 '불가항력적'인 죽은 짐승을 뜯어먹듯, 수녀들은 '불가항력적'인 어린 소녀들을 은폐·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킨다. 수녀들은 현관을 자물쇠로 잠궈두고 담벼락 꼭대기에 깨진 유리 조각을 죽 박아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바닥에서 기어 다니며 걸레질을 해서 마루에 윤을 냈다.
 
 
 
 

 세라

펄롱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그 집에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줬다. 펄롱이 태어난 날, 아침에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고 또 둘을 함께 집으로 데려온 사람도 미시즈 윌슨이었다. p16

"원래 이름은 뭐야?" 펄롱이 말투를 누그려 물었다.
"세라. 세라 레드먼드요."
"세라. 우리 어머니 이름하고 같구나. 어디에서 왔니?" p82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p120

세라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었던 아이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세라를 그 시설로부터 탈출시키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펄롱은 세라와 자신의 어머니를 동일시한다. 어머니는 혼외 임신을 한 여성이었고 어쩌면 세라처럼 그 시설에 수용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펄롱을 낳고 키웠다. 펄롱은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처지의 아이를 돕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고, 그 결과 용기를 내어 세라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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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읽기

■ 펄롱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p24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99

펄롱은 용기있는 사람이다. 세라를 도울 때, 펄롱은 자신의 자기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느낀다.(p117)

펄롱은 아빠로서 딸들이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보호 본능’을 느낀다. 반면에 펄롱은 종교 시설의 부당함을 목격하고도 그 종교 활동에 기꺼이 참여한 자신에 대해 위선과 모순을 느끼며 ‘용기’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결국, 그중 용기를 택한다.

펄롱은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p29)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즉 펄롱은 ‘그냥’하는 사람이 아니다.





■ 아일린

"그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제 무덤 판 사람도 있는 거 알지?"
"애 잘못은 아니잖아." p21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p57

아일린은 펄롱의 부인이고 ‘자기보호 본능’을 느끼는 사람이다. ‘걔들’이 시설에 수용된 것은 자승자박이고, ‘우리 애들‘을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일린은 ’팬을 오븐에 넣고 문을 닫자마자 부엌을 둘러보고는 딸들한테 얼른 치우라고, 그래야 자기가 다음 일을, 다림질을 시작할 수 있다‘(p29)고 말하며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가는‘ 사람이다. 즉 아일린은 ‘그냥’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읽기

■ 사소한 것들

다시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펄롱은 네드가 오래 전 크리스마스에 선물해 주었던 보온 물주머니를 생각했다. 그 선물을 받고 실망하긴 했으나 그것 덕분에 밤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따스함을 느꼈다.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펄롱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끝까지 읽었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에게 큰 사전을 이용해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라며,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펄롱은 그 단어는 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어희'가 아니라 '어휘'였다. 이듬해 펄롱이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부상으로 밀어서 여는 뚜껑을 자로도 쓸 수 있는 나무 필통을 받았을 때, 미시즈 윌슨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미시즈 윌슨이 말했다.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다." 37

네드가 말했다. "너에 대해 함부로 말한 적도 없고, 네 엄마를 심하게 부리지도 않았어. 급료는 적었지만 그래도 여기 우리 머리 위에 제대로 된 지붕이 있었고 굶주리며 잠자리에 든 적은 단 하루도 없었으니까. 나야 작은 방 하나밖에 없었지만 그 안에 성냥갑 하나 따위 사소한 거라도 없는 게 없고. 내가 지내는 방은 내 방이나 다름없고, 밤중에라도 배고프면 일어나서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잖아. 그만큼이나마 누리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p94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p120

펄롱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네드로부터는 보온 물주머니를 받았고, 미시즈 윌슨으로부터는 「크리스마스 캐럴」 책을 받았다. 간절히 원하던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였다. 그러나 보온 물주머니 덕분에 오랫동안 따스할 수 있었고, 책 덕분에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선물들은 당시에는 사소한 것들(small things)이었지만 사실 결코 사소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의 제목에서 '아주 작은 습관'에 '힘'이 있다는 표현과 같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의 제목에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책 라푼젤 빛나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

■ 개인적인 소감

이 소설을 읽으며 '라푼젤' 이야기가 떠올랐다. 라푼젤에서 마녀 마더 고델은 라푼젤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은폐·감금하고 자신의 젊어지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라푼젤을 이용하며 플린 라이더가 나타나 라푼젤을 구해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이용하는 수녀를 보며 마녀 마더 고델이 떠올랐다. 자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세라를 보며 라푼젤이 떠올랐다. 용기를 내어 약자를 구하는 펄롱을 보며 플린 라이더가 떠올랐다. 더불어 수녀들처럼 약자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펄롱은 잠시 서서 노래를 들으며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솟았고 하늘에서는 작은 별이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서 있는 동안 가장 밝은 별이 순간 칠판 위 분필 선 같은 자취를 남기며 떨어져 사라졌다. 또 다른 별은 다 타버린 것처럼 서서히 희미해졌다. p67

 

펄롱은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별, 떨어져 사라지는 별, 다 타버린 것처럼 서서히 희미해지는 별들을 본다. 나 또한 이 순간에도 고통 속에서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가 자살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펄롱의 일은 집집마다 석탄을 배달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날 각 집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이다. 펄롱이 다른 사람들은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것들을, 결코 사소하게 여기지 않고 헤아린다. 이러한 펄롱의 따뜻한 친절은 마치 집을 데워주는 석탄과 같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따뜻한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인지, 용기가 있는 사람인지, 자기보호 본응이 지나친 사람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소설 추천!

소설의 길이가 짧아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았고,

사유와 여운은 결코 짧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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